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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와 뉴턴이 인정한 진짜 천재 아르키메데스


"제게 설 자리와 도르레를 주시면 지구를 움직여 보겠습니다." 

기원전 260년경 아르키메데스가 시라쿠사의 왕 히에론 2세에게 한 말입니다.








그는 지레와 도르레를 이용해 육지에 있는 4064톤의 시라쿠시아호를 혼자 힘으로 물에 띄워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도 전설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천재성에 관한 이야기도 수없이 많습니다.






거대한 배를 진수하기 위해 지레와 도르레를 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물 펌프도 그가 발명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287년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라쿠사는 로마와 카르타고와 그리스 등을 사이에 낀 변방 도시였지만 그리 낙후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시라쿠사의 왕 히에론 2세와 그의 아들 겔론은 지적인 성향의 군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후원 덕분에 시라쿠사도 학문적으론 나름 괜찮은 수준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당시 고대 학문 최고의 중심지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유클리드가 기하학을 가르쳤고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히파르코스는 별들을 밝기에 따라 분류한 별자리 목록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고향으로 돌아간 아르키메데스는 그곳에서 평생 지내며 발명하고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남은 여생을 보냅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론 히에론 왕이 금세공 기술자에게 금을 주며 금관을 만들라고 했는데 왕은 기술자가 금을 일부 빼돌리고 더 싼 금속을 넣지 않았을까?하고 의심했고 









왕은 아르키메데스에게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지시합니다. 아르키메데스에게도 꽤 어려운 난제.









어느날 탕 안에서 이 난제를 곰곰히 생각하던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이 탕 안으로 깊이 들어앉자 물 높이가 올라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는 알몸인 채로 왕에게 달려가며 유레카! 유레카!라고 외쳤습니다. 유레카는 알았다는 뜻.










그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왕에게 증명해 보였습니다. 

먼저 금관과 똑같은 무게의 금을 물에 담그고 그에 따라 물이 올라간 자리를 가리켰습니다.

그 다음 문제의 금관을 물에 담그자 물은 아까 금을 물에 담궜을 때보다 훨씬 높이 올라갔습니다.


즉 문제의 금관엔 금 말고 다른 금속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



 


 

 

왕을 속인 기술자는 처형되었습니다.



이렇듯 놓치기 쉬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도 그는 엄청난 통찰력을 보였고 이는 그의 획기적인 연구의 기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수학계에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모든 물체엔 무게 중심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간파, 증명했고 

시소의 양 끝에 각각 뭔가를 올려놓을 때 무게가 덜 나가는 것이 무거운 것보다 멀리 있어야만 균형이 유지된다는 것을 처음 알아낸 사람 역시 아르키메데스입니다.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구와 원뿔 같은 도형의 부피와 면적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는 구의 표면적이 그 구의 가장 큰 원의 면적의 4배, 다시 말해 구와 동일한 반지름을 가진 원의 면적의 4배라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또한 구의 부피는 그 구가 딱 맞게 들어가는 원기둥의 3분의 2라는 것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히에론의 아들 겔론 왕에게 모래 계산자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으로는

"왕이시여, 모래알 수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제가 수학적 증명을 통해 어떤 수들은 모래알 수를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오늘날 제곱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숫자를 늘려 나감으로써 거대한 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 줬습니다. 그는 P라는 숫자의 1억 제곱을 인용하였습니다.






그가 발견한 원리들은 훗날 수많은 학자들이 사용한 모든 수학적 도구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212년 로마 함대가 시라쿠사를 포위했습니다.







이미 70이 훨씬 넘은 아르키메데스는 고향을 지키기 위해 투석기를 만들어 로마 함대를 공격하였고








햇빛을 초점에 모아서 불을 붙이는 거울을 이용, 로마 함대들을 태워 버리기도 했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기발한 발명에 감명을 받은 로마군 사령관 마르켈루스는 부하들에게 아르키메데스를 잘 대우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소식을 듣지 못한 로마군 장교가 아르키메데스와 마주쳤습니다.

아르키메데그가 "내 작업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자 로마군 장교는 자신과 함께 갈 것을 요구했고 아르키메데스가 이를 거부하자









장교는 칼을 빼 들어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위대한 발명가이자 수학자의 어이 없는 최후라고 볼 수 있죠.










아르키메데스의 저작 상당 부분은 아랍의 수학자들 덕분에 남겨졌으며 그것들은 17세기 유럽에서 과학 혁명이 시작될 때 사용되었습니다.











갈릴레오는 "아르키메데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고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만 가능한 일이다"라고 했는데 그에게서 가장 위대한 거인이 바로 아르키메데스라는 것입니다.